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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팬데믹, 영국 학교의 성폭력과 여성혐오

  • 작성자권정임
  • 등록일2021-06-21 08:28:55
  • 조회수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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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팬데믹, 영국 학교의 성폭력과 여성혐오

한겨레     2021. 06. 20. 19:36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ㅣ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미투(#Me too) 운동은 성폭력을 대중 토론의 주요 주제로 만들었다. 2017년 말 미국 영화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이 수십년에 걸쳐 저지른 성착취와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미투 해시태그가 넘쳐났고, 전세계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성희롱과 성폭행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를 통해 여성혐오의 존재가 드러났고, 어느 정도 후퇴했다.

지난해 6월 영국에서 만들어진 ‘모두를 초대합니다’(Everyone's Invited)라는 누리집은 젊은 여성들이 익명으로 성희롱과 성폭행, 강간 경험을 공유하는 주요 공간이 됐다. 그리고 다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한 현직 경찰관이 33살의 마케팅 회사 간부 세라 에버러드를 납치해 강간하고 살해한 것이다. 이후 더 많은 젊은 여성과 여학생을 포함해 수많은 여성들이 ‘모두를 초대합니다’에 참여했다. 유명 사립학교를 비롯해 영국 학교의 성희롱과 성폭행, 강간 등 충격적인 실태가 공개됐다. 노스런던의 하이게이트 학교 학생들은 교내 성폭력과 학교 지도부의 대응 실패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학교 지도부가 희생자를 돕기보다는 수업료를 받는 학교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다는 것이다.

대중의 압력이 높아지자, 교육부 장관은 교육표준청에 아동 보호와 복지 증진을 위한 긴급 조사를 지시했다. 교육감찰관의 보고서에는 32개 주와 사립학교가 포함됐고 900명이 넘는 아동, 청소년과 대화가 이뤄졌다. 이 보고서는 읽기가 불편하다. 여학생 10명 중 9명 이상이 성차별적 호칭을 경험했고, 10명 중 8명은 원치 않는 부적절한 성적인 발언을 들었다. 또 거의 10명 중 7명은 원치 않는 성적인 행위를 하도록 압박받았다.

학교 성폭력은 “강간 농담”과 같은 스쿨버스에서의 언어폭력에서 멈추지 않는다. 거의 3분의 2의 여학생이 남학생들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다. 교육표준청의 보고서는 영국 학교에서 성희롱이 “일반화”되었다는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다. 소녀와 젊은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겪었고, 원치 않는 노골적인 사진과 영상을 받는 것과 같은 성희롱이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보고서가 소년들과 젊은 남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피해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예컨대, 2018~19년간, 13살에서 15살 사이 강간 피해자 중 90%는 여학생이다. 성폭력을 당한 소녀들은 대체로 범죄 신고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분명히 그들은 홀로 남겨져 지지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소년과 젊은 남성들의 행동을 비난하기보다는 “소년은 그저 소년처럼 행동할 뿐이다”와 같은 문구들이 너무나 흔히 사용되고 있다. 또래 집단의 성폭력과 여성혐오 문화가 널리 용인되고 있으며, 너무나 흔하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주요 지상파방송사 중 하나인 <채널4>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신고 기피 현상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 웨일스 학교 안팎에서 경찰에 신고된 성희롱·성폭행 사건(이 중 10분의 1가량이 강간)은 6300건에 이른다.

분명히, 학교와 더 나아가서 사회는 어린 피해자,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폭력이나 여성혐오를 단호하게 비난하지 않는 문화에서 자란 모든 사람들까지 실망시켰다. 확실히, 학교 성교육은 학생들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교육표준청이 성교육을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 놀랍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제를 학교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확실히, 부모들도 큰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정에서 나타나는 부분은 더 큰 사회문제의 일부분일 수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나서서 사회·경제 생활의 다분야에 걸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 문화를 근절하고, 성평등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것은 큰 도전이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영국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또는 한국의 학교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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